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앙리 4세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[[발루아 왕조]]와 [[카트린 드 메디시스]]를 매우 증오했다. 프랑스의 왕위를 두고 치열하게 다툰 일생 일대의 적이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하다. 거기에 카트린이 죽을 때 유언장에 자신의 이름을 적지 않은 것에 대해 앙금을 가졌다. 덕분에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죽은 이후에도 제대로 장례조차 치러지지 못하고, 시신마저 어딘가의 성당 바닥에 묘비도 없이 묻혀지내야만 했다. 그래도 통치자로서의 카트린은 긍정적으로 본 모양인지, 그녀에 대해서 이런 평을 남겼다. >남편의 죽음으로 졸지에 어린 자식들을 품에 안고서 왕위를 빼앗을 생각만 하는 두 가문, 즉 우리 가문(부르봉 가문)과 기즈 가문에 맞서야만 했던 그 불행한 여인이 도대체 뭘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? 그녀로서는 자기 자식들이 계속 왕국을 통치할 수 있도록 두 가문을 속여가면서 기이한 사람의 흉내를 내야만 하지 않았겠는가. 나는 그녀가 그만큼이라도 해낼 수 있었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. 그나마 이게 긍정적인 평가라고 하니 카트린에 대한 앙리 4세의 증오를 알 수 있다. 희한하게도 첫 번째 왕비가 바로 그토록 증오한 카트린의 딸 [[마르그리트 드 발루아|마르그리트]]였다. 증오하던 여인의 사위가 된 셈. 게다가 마르그리트와의 혼인을 무효화한 뒤 결혼한 두 번째 왕비인 [[마리 드 메디시스]]도 똑같이 카트린의 친척이었다. 마리와의 결혼은 토스카나 대공가였던 메디치 가문의 [[지참금]]을 노린 정략적인 결혼이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